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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앙크앙! 2023. 1. 12.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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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 프로필

본명 : 권보아
나이 : 1986년 11월 5일
활동 시기 2000년 8월 25일 ~
종교 : 천주교(세례명: 키아라)
소속사 SM 엔터테인먼트
소속 그룹 GOT the beat

 

 

 

 

보아 이야기

2000년 8월 25일 SM엔터테인먼트에서 데뷔한 대한민국의 여성 솔로 아이돌 가수이다.

‘아시아의 별’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으며, 더 나아가 작사 및 작곡, 연기, 진행, 심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보아의 대표적인 수식어로 유명한 ‘아시아의 별’이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한류 스타 중 하나이자 대형기획사인 SM엔터테인먼트의 암흑기 시절을 책임진 소녀 가장이기도 했다. 현재 SM 내에서 대우받는 수준, 본인의 입지를 감안하면 그야말로 SM의 기둥을 몇 개나 세웠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큰 기획사를 책임질 정도의 압도적인 파급력과 수익으로 인해 걸어다니는 중소기업이라는 수식어가 있었고 한국의 브리트니 스피어스라는 별명도 있다.

특히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한 한국 가수로 보아의 앨범 판매 기록이 16년만에 경신되었을 정도로 일본 내에서 엄청난 판매량을 자랑했다. 2004년 MTV 아시아 뮤직 어워드에 한국과 일본의 양국 대표 자격으로 참석할 정도로 양국 내 입지는 절대적이다.

이는 만화 러키☆스타 4권 단행본에서 권두 4컷만화에서 잘 드러나는데, 이즈미 코나타가 ‘그러고 보니 BoA라는 가수가 있었지.’라고 1컷에서 말하고, 4컷에서 ‘근데 지금까지 그룹인 줄 알고 있었지 뭐야’라고 말하자 그 말을 들은 상대방이 ‘적어도 그 정도 상식은 갖고 있어야 할 거 아냐’라는 식으로 말한다. 러키☆스타가 2004년 첫 출간된 만화임을 감안하면, ‘그 정도 상식’ 부분에서 BoA의 2000년대 일본에서의 위상을 엿볼 수 있다.

요약하자면 한류의 기틀을 세운 아티스트로, K-POP의 발전에 큰 공로를 세웠다.

전성기에는 한일 양국에서 촬영한 TV CF가 셀 수 없을 정도다. 휴대폰, 자동차, 의류, 화장품, 음료, 과자, 맥주, 카메라, 나이키 의류 등등의 CF에 출연하였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 프랑스 르몽드지 1면에 실린 적이 있다. 그리고 일본 교과서에 실려 있기도 하다.
2005년 당시 한국 연예인 연수입 1위. 당시 보아가 벌어들인 수익은 연 500억원
Westlife, Backstreet Boys, Akon, Florida 등 세계적인 가수들과 같이 부른 노래가 있다.

 

 

 

 


2006년 드림웍스 영화 오버 더 헷지의 한국, 일본 더빙을 맡았다. 이것을 계기로 당시 칸 영화제에 초청되어 참석했다. 여기서 할리우드판 더빙을 맡은 브루스 윌리스와 에이브릴 라빈과 함께 레드카펫을 걸었다.
2004년도에 로레알의 화장품 브랜드 '메이블린 뉴욕'의 첫 한국인 전속 모델로 발탁된 적이 있다.

2000년 8월 25일 만 13세의 나이에 1집 "ID; Peace B"로 데뷔했으며, 8월 27일 'SBS 인기가요'를 통해 데뷔 무대에 섰다. 2001년에는 데뷔곡을 일본어로 번안해서 일본에 데뷔하였다. 2008년에는 "Eat You Up"으로 미국 본토에서 데뷔했다.

 

이후 4세대인 2022년 35세에 SMCU EXPRESS 콘서트에서 프로젝트 그룹인 GOT the beat로 그룹 데뷔해 데뷔만 4번 한 가수다. 4세대 걸그룹 중에서는 물론 현재 활동하는 걸그룹들 중에서도 보아가 1986년생으로 최연장자이며, 현재 활동중인 아이돌 멤버들 중에서도 신화 WDJ, 슈퍼주니어를 제외한다면 보아가 최연장자다. 그리고 4세대때 걸그룹으로 데뷔한 1세대 가수이며, 1세대때 최연소로 데뷔했으며, 4세대때 최연장자 걸그룹 멤버로 데뷔했고, 1.5세대부터 4세대까지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사실상 SM엔터테인먼트가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인물 중 하나이다. SM엔터테인먼트 내에서도 이수만 대표 본인에게 직접 발탁된 연예인은 얼마 없는데 보아가 그 중 1명이다. 그 공로 덕인지 2014년 3월에는 강타와 함께 비등기 이사로 선임되었다.

 

비단 SM의 성장이 아닌 한국인 가수의 본격적인 해외진출 성공에도 한 획을 긋고 최연소, 최초, 최다의 수식어가 따라붙는 등 한국 가요계의 역사를 다시 쓴 인물이다. 강타가 무릎팍 도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수만이 가장 아끼는 인물이라고 한다.

 

보아의 오디션 썰은 SM내에 전설과 같이 구전되고 있다. 보아의 데뷔는 잘 알려져 있듯 오디션보러 간 둘째 오빠를 따라갔다가 보아만 캐스팅 되었다는 흔한 얘기.백화점 댄스경연대회에서 무대에 올라 나이키를 하는 등 격한 춤을 추며 그 당시 연예기획사들로 부터 명함을 15개를 넘게 받았고, 거기에 SM도 있었다. 그렇게 SM 오디션을 보러 가서 오디션을 보게 되었는데 관계자들에게는 춤으로 캐스팅, 이수만에게는 노래로 캐스팅 된 특이 케이스. SM오디션에서 보통 춤, 노래 한 가지로만 캐스팅 되는데 반해 보아는 두 가지 모두로 캐스팅 된 사례. 당시 보아는 초등학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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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한국어, 영어의 3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 데뷔 전부터 신비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전국의 모든 어린 소녀들을 뒤져 해외 진출용 가수로 키워질 예정이었는데, 당시 보아를 발견하여 옳다구나 캐스팅 했다.[33] 보아는 노래와 춤의 트레이닝 이전부터 일본어 언어 교습을 훨씬 더 많이 받았다고 한다. 본인이 자신에게 가장 대견하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언어습득력이다.

2000년대 초반, 한일 양국에서 최정상의 인기를 얻은 가수이자 역대 한국 댄스 가수 계보를 대표했던 가수. 

전성기였던 2000년대 초반에 10대 중반의 나이에 비해 뛰어난 춤과 실력으로 가요계 최정상급에 위치하면서 일본에 진출하여 엄청난 인기를 얻고 1.5세대 해외 진출 개척에 서막을 연 가수로 평가받는다. 전성기가 지난 후에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유지하며 단순한 기획형 아이돌을 넘어서 아티스트로서 꾸준히 음악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가수로서의 실력, 인기, 음악 외에도 철저한 자기관리로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 역시 한국 최고의 가수이자 셀럽이다.

한국 대중가요의 연습생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자리잡게 만든 1등 공신이기도 하다. 연습생 육성 시스템 자체는 보아 이전에도 있었지만[34] 연예 기획사에서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 연습생을 육성하고 이윤을 뽑는 시스템을 완성하고 대성공을 거둔 사례가 보아였기 때문에, 대부분이 보아를 연습생 시스템이 만든 모범사례로 인정하고 있다.

요즘 아이돌 시장에서 흔한 ‘연습생 이후 데뷔’의 모범사례이기 때문에 보아의 성공은 이후 데뷔하는 가수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이전에도 연습생 시스템은 존재하였지만 주먹구구식이었다.

시스템 역시 갖추었지만 지금만큼 가혹하고 치밀한 육성시스템은 아니었다. 보아만 하더라도 연습실 환경이 낙후되어서 거울도 없이 댄스 트레이닝을 받았다고 한다. 보아의 연습생 시절 연습실은 지금의 하늘무늬 커튼이 있는 쾌적한 공간이 아니라 지하에 있는 연습실이었고 비가 오면 물이 찼을 정도로 열악한 시설이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기획사들이 자사 아이돌들을 트레이닝할 때, 거의 필수적으로 외국어를 교육하는 비율이 급증하였다. 적어도 일본어는 무조건 필수적으로 가르치며, 국내 프로모션과 해외 프로모션을 겸하는 기획사들이 많아졌다. 소위 말하는 ‘현지화’ 전략의 모범 사례다.

데뷔 이래로 보컬 트레이닝을 빠짐없이 받고 있다. 2005년2월 일본 SMAPxSMAP 출연 당시 토크에서 보컬트레이닝을 꾸준히 받고 있다했으며, 2007년에는 박선주의 인터뷰에서 보아의 보컬 트레이닝을 맡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그 후로 2018년 리얼리티 프로그램 키워드#BoA의 미방분 영상에서 보컬 선생님을 소개하면서 여전히 보컬 트레이닝을 받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렸을 적에 살던 남양주시 화도읍이 지금과 다르게 정말 시골이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족들과 서울에 이사와서 지낸 적이 있다던데, 1980년대 당시만 해도 서울과 교외 지역 간의 풍경이 확연히 달랐다.#
유치원 때부터 가꿔 온 재능을 SM엔터테인먼트에서 인정받아 1998년도부터 입사한 직후에도 학생 신분으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고 학업엔 학업대로 열중하여 학급 임원과 학생회장을 지냈다.

 

서울삼육중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했지만 일본에서도 활동하기 시작하고 살인적인 스케줄로 인해 학교를 못 다니게 되자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2002년에 고입검정고시를 패스하였고 2003년4월에 대입검정고시를 패스하였다. 일본어를 수준급으로 구사할 수 있다. 그야말로 엄친딸 뇌섹녀가 따로 없는 셈.

골프가 취미라고 한다.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시작했으며 성격이 워낙 조용한 데다가 하도 집순이라 가장 잘 맞는 스포츠라고. 2018년 출연한 방송에 동반출연한 골프선수 친구가 있으며, 골프 채널도 자주 시청한다고 한다.


최근에도 보컬리스트로서도 댄서로서도 건재함을 보여준다. Siedah Garrett과 콜라보 하여 마이클 잭슨을 기리는 Man In The Mirror 공연을 같이 하는데 연습 영상을 보면 보아는 보아대로 깔끔한 고음처리와 함께 뛰어난 곡 소화력을 보인다. 게다가 영어 가사도 본토 발음의 수준으로 소화했다.  그리고 최근 주간아이돌 및 아는 형님에 출연해서 춤을 보고 그대로 복붙하는 스킬을 시전하는가 하면 트와이스의 라이키 춤은 물론 무려 나야 나 안무를 파워풀하게 소화했다. 


2018년 3월 25일, 4월 2일에 집사부일체 6대 사부로 출연하였다.


2019년 2월 스포츠브랜드 나이키 '2019 우먼스 저스트 두 잇' 캠페인 광고에 내레이션을 담당했다.
아무로 나미에를 동경하는 선배이자 팬이라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밝혔다. 2018년 9월에 있었던 마지막 공연에 가고 싶었으나 사정상 가지 못해 SNS에 장문의 편지를 남기며 아쉬워했다. 선배로서 배울 점도 많고 무대가 멋있어서 어릴 때부터 늘 우상이었다고.

보아는 2014년부터 SM 엔터테인먼트의 비등기 이사로 재직 중이다. SM은 2018년 3월 보아를 비롯한 임직원 165명에게 스톡옵션 43만2000주를 부여하였고, 보아는 같은 비등기 이사인 강타와 동일하게 6000주의 스톡옵션[57] 부여받은 바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의하면 보아는 2021년 현재까지 두 차례의 스톡옵션 행사를 하였다. 2020년 8월 4046주를 주당 6만2494원에 처분하였고, 2021년 10월 13일 754주를 주당 7만6106원 처분했다. 두 번의 스톡옵션 행사로 총 1억556만원의 수익을 실현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솔로가 낫냐와 그룹이 낫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룹이 낫다고 단호하게 얘기를 했는데, 그 이유는 솔로는 너무 외롭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소녀시대 1989년생들과 나이가 3살 차이 밖에 나지 않는다고 그들과 활동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어필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바람을 GOT에서 이뤄냈다. 그리고 데뷔 이후 첫 1억뷰도 달성하였다.


2004년 10월 28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펼쳐진 현대 유니콘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시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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